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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뜻
    [Thinking]/Bible 2010. 10. 18. 23:37

    누가복음 22장 42~43절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

    이 세대는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면서도(엄밀히 말하자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는 것을 떠나서 이 세상에 바른 부분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깔끔하게 정렬되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다.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인가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시되며, 많은 군중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부분이 바르게 흘러가는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답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는 많은 사람의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다와 대제사장들에게 잡히시기 전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던 내용이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알고계셨다. 그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간절했으며, 그 행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참된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기도의 원리인 바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라고 어찌 그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지고싶었겠는가.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이 잔을 옮기는 것이라면 옮겨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아버지의 뜻이 다를지라도 그러한 아버지의 뜻대로 하고 싶다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단지 작은 응답을 보여주실 수 밖에 없었다. 천사를 보내어 힘을 더하게 하신 것이다. 언제나 기도할 때 또한 적용되는 다른 한가지 원리지만, 사실 기도할 때에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과 역경에 대해 이길 힘을 주시는 법이다.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면 말이다.

    최근 행복전도사라고 불리워졌던 최윤희 부부가 자살을 했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그가 보여줬던 것이 행복이 아니라, 엄밀히 얘기하자면 그가 주장했던 것. 노력했던 것이 행복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역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행복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길 700가지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남겼다. 물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사례로 이지선씨를 예를 들어 알 수 있다. 이지선씨는 얼굴 전면에 화상을 입었다. 그래서 이전에 아름다웠던 얼굴을 다 버리고 뭉개진 얼굴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 사고가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것도 아닌, 상대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에 최고로 불행하다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자살을 한다고 해도 누구하나 이해못할 사람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으며 살 뿐만 아니라 진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을 넘어서서 이렇게 이끄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주위에 희망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히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걷고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녀는 사고 이후에 정말 죽을것같은 고통을 느끼며 하나님과 기도하며 씨름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백번은 통곡하며 울고 현실을 부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이셨던 모습처럼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다면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삶을 결단했을 때,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누구든 위의 두 사례를 보아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껍데기의 모습이 어떠한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만 그 영혼의 중심에 누구를 모시며 예배하였는가에 따라서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700가지의 고통을 당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고통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심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가운데 있다고 했다면, 그리고 그 교제가 예배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금 그 사람은 진짜 행복전도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행복을 경험했을 것이다. 창조주를 예배하는데 슬픈 피조물이 누가 있겠는가.

    이제 다시 이 세대를 되짚어 본다. 물론 나를 포함한다. 이 세대는 매우 악하다. 하지만 그 악함이 논리와 과학이라는 것으로. 그리고 다형성이라는 측면으로 매우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다. 아주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왕따가 될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런 때에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세상에 집중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비위를 맞추다 보면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만한 시간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시간과 연예인과 기계들과 친구들과 논리들과 인기들을 예배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예배할 시간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두는 예배자이다. 누구나 다 무엇인가를 예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모두가 다르다. 자신의 꿈을 예배하는 자도 있고, 자신의 가족을 예배하는 자도 있다. 자신의 직장을 예배하는 자도 있고, 여자(남자)를 예배하는 자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도 있다. 나는 이 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자들이 넘쳐난다라는 말로 말이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것이 바른 것인줄 알고 돌이키는 자들이 날마다 동역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부족하지만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자들이 넘쳐흐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이 가운데 내가 있길 원한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고 살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가 아니다. 내 스스로를 오늘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맡겨 본다. 그리고 더욱 가까이 나가길 원한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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