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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Thinking]/Bible 2010. 8. 2. 01:47

    누가복음 12:1~12

    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나는 주말이 되면 집을 한번씩 청소를 한다. 물론 지저분하다고 느낄 때엔 주말에 되기 전에 하기도 한다. 보통 청소를 할 때에는 청소를 하는 구역들이 정해져 있다. 우선 방과 거실, 베란다까지 해서 빗자루로 한번 쓸고, 그리고 청소기로 밀고, 그 다음에 걸레질을 하면 어느정도 대략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쓰레기나 분리수거함이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을 비우기도 한다. 사실 일반적인 청소는 이정도이다. 싱크대 관련 부분은 친구가 맡아서 하기로 했으니 왠만하면 그곳은 넘어간다. 물론 지저분하다고 느끼면 그냥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청소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대표적으로 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욕실이다. 욕실은 항상 세면하고 샤워하니 어느정도 계속 물이 오가는 상황이고 이렇다보니 깨끗해지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다가 며칠 전 손님을 맞이할 때가 되었는데, 그 때 청소를 나름 세밀하게 한다는 명목하에 욕실 구석구석을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물 때가 끼었는데 까맣게 낀 것이다. 그 부분을 청소하느라 좀 더 다른 때보다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청소하기 전에 샤워를 했는데, 다시 청소를 끝내고 또 샤워를 하는 깔끔하지 못한 내게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던 때가 있었다.
    다른 곳은 그냥 그렇게 습관처럼 잘 했는데, 왜 그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서 물 때가 쌓였던 그 부분은 힘들게 청소를 했어야만 했을까 고민해 보았다. 바로 그곳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곳이었고, 그 물이 오래되자 슬슬 색이 변하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그대로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그것을 애초에 발견하고 청소를 했으면 금방 해결했을 것을 게으른 내가 그냥 놔두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숙성(?)시켜 버린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누가복음의 이 말씀을 보면서 누룩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졌다. 누룩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효제.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갖는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이다."라고 되어있었다. 술빵을 만드는 것인가..?? 아무튼 이것을 이용하면 빵이 발효가 되면서 더 맛있게 변할 것 같다는 추측은 된다.(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이 기술을 고대 이집트에서 개발된 뒤로 로마시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그것을 적용시켜 먹었던 것 같다. 그 누룩이라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던 빵을 만드는 전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빵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이집트에서 이용했던 기술이라는 데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누룩이라는 것은, 특별히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표현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는데, 아마도 그 고지식한 율법에 치우친 행위들을 의미하는 말로 보인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그 행위를 말하는 것 보다도, 그 행위를 이용한 외식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즉, 남들에게는 율법도 잘 지키고, 멋있어보이는 행위들을 하면서 잘나고 깔끔한 모습을 풍기고 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교만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모습을 크게 책망하신 것이었다. 그것도 수만명이 모인 자리에서 말이다. 그 때말로 수만명이면 실로 엄청난 것 같다. 예수님이 한마디 하셨다고 맨 뒤의 사람이 들릴만큼 마이크와 스피커가 있던 것도 아니고... 아마 말에 말로 전파되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가운데에서도 그 수많은 사람이 몰려서 들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사람들이 모인 것은 그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를 훈계하는 모습이 그들의 발걸음을 모일 수 있도록 재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인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들을 연이어 하신다. 누구에게나 겉과 속이 있는 법인데, 겉에 있는 것이야 보통 사람들에게 다 보여지는 법이지만, 속에있는 것까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진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즉 어떠한 속삭임이라도 지붕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파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다는 것이다. 어두움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곳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하는 행동과 말들, 마음속에서 항상 품고 다니는 생각들, 평소에 하는 사소한 습관들 하나까지 모두 밝히 보여지니 그 모든 행위에 있어서 항상 주의할 수 있도록 계속 말씀하신다. 이러한 법칙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외식 행위는 전혀 쓸모가 없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한다면 그러한 외식이 쓸모없고 오히려 독이 됨을 알고 행해야 한다. 누룩과 같이 퍼져있는 썩어 문드러진 마음과 생각이 있다면 당장 버리고 누룩이 없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며,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젠 두려워 할 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두려워 할 자 역시 이 땅의 생명만 다스리는 권세자가 아니라 이 땅의 생명 이후의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심과 동시에 귀하게 여기시고 결코 가벼이 여기시지 않으니 그 분을 두려워할 때, 또한 그 분을 인정할 때 그 분도 나를 인정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위정자나 권세자들 앞에서도 마땅히 해야 할 말을 가르치신다고 하셨다.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면, 이 땅에서는 어떠할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결국은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 삶이 달콤한 누룩처럼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할지라도, 진정한 기쁨을 안겨주는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도 볼 수 있는 누룩이 있다.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것처럼. 이정도는 해도 된다고 여겨지는 사소한 행동들... 결국 그런것들이 커져서, 나를 망하게 하는줄도 모르고 나에게 너무 관대하게 살아가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나서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한 척. 가증스럽지 않은 척. 하며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똑같이 손가락질 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선 그렇게 하기 이전에 나의 겉과 속을 다르게 하지 말자. 외식이 아니라. 진정함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연약한 나를 발견할 때 나를 숨기는데 급급하기보다는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자. 그 뒤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아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친밀한 관계속에 거하지 않는다면... 나도 악한길 가운데 거하겠지만, 하나님 역시 더욱 슬퍼하지 않으실까 생각해본다. 내 가운데 12절의 모습처럼 마땅히 할 말을 성령께서 가르치시도록. 그리고 그 말씀을 내가 들을 수 있도록. 내 하루하루를 연단시켜가야겠다.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가운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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